2009년 10월 20일 화요일

실리콘 밸리의 창업 환경

얼마 전, Bay Area K Group을 통해 한국에 있는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Devmento에서 연 '한국 개발자 컨퍼런스'였는데, 실리콘 밸리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이 요지였다. 구글 New Business Development팀에서 일하는 현유형과 Haas School의 주형형과 함께 강의 세션을 맡게 되었는데, 어떤 주제로 내용을 전달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 동네 와서 인상깊게 느낀 '창업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는 한국에 있을 때 회사 창업 과정을 보아왔고, business school에 있으면서 주변에서 창업하는 친구들이 어떤 과정을 겪는지 봤고, 또 아는 한국 사람이 창업해서 성공하는 케이스도 보아 왔기 때문에 할 얘기가 좀 있었다.

아래에는 그날 강연에서 사용했던 presentation file이다.



아래는 판도라 TV 에 올라온 강연 동영상이다.

여기서 꼭 강조하고 싶었던 얘기가 몇 가지 있다. 실리콘 밸리가 가진 장점은 무엇인가, 즉 창업에 도움이 되는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네 가지 분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 People, Culture, System, and Money

1. 사람 (People)
실리콘 밸리는 인재, 특히 Venture Capitalist, Entrepreneur들과 Engineer들이 몰리는 곳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엔지니어' 인재가 외부에서 공급된다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 - 인도, 중국, 한국.. 신기하게 일본 엔지니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와 중국은 어디가나 넘쳐난다. Sun Microsystems에서 내가 같이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주로 중국, 인도, 러시아인들이고, 엔지니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 중 하나인 구글에도 역시 중국과 인도 출신의 엔지니어들을 무수히 볼 수 있다. Apple 도 마찬가지이다. Apple에 중국/한국계 엔지니어들이 정말 많고, Apple 의 본사가 위치한 Cupertino라는 동네는 중국인들이 완전 장악했다. Wikipedia에 따르면 44.4%가 Asian인데, 실제 가 보면 그 이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여기 저기 보이는 가게들에는 중국어로 된 간판이 잔뜩 붙어 있고, 중국인들을 위한 market도 정말 많다. 그 때문에 Cupertino는 이 근처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동네 중 하나이다. 중국인들 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많이 살고, Asian들이 많아 교육열이 높아서이다.

근처에 많이 있는 공대들도 인재 공급에 한 몫을 하는데, Stanford, Berkeley는 미국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공대를 가지고 있고, 항상 외국에서 온 엔지니어들로 넘쳐난다. 또 명성이 좋은 Cal-tech, UCLA, UCSD 등은 조금 떨어진 LA, San Diego등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곳 졸업생들도 실리콘 밸리로 많이 취직한다. MIT 등 동부에서 오는 사람도 물론 많이 있다. 거기에 SJSU, Cal-Poly, UC Davis, UC Santa Cruz등을 합하면 매년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배출되어 일자리를 구하거나 창업을 한다.

외국에서 온 엔지니어들이 많다는 것이 창업 환경에 도움이 될까? 그들은 일단 risk-taking을 한 사람들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미 큰 risk를 감수하고 도전을 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창업에도 또한 적극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 문화 (Culture)
실리콘 밸리가 '창업'의 상징이 된 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그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이 HP의 창업 스토리이다. 예전에 이 곳은 그냥 농장이 잔뜩 있는 곳에 불과했다. 1935년, William Hewlett과 David Packard가 Stanford에서 Frederick Terman 교수를 만났고, 졸업하며 Terman 교수의 지도를 받아 단돈 538불로 차고에서 HP를 창업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Terman 교수는 그 후 Stanford Research Park를 설립하고 Varian Associates, Eastman Kodak, General Electric, Lockheed Corporation등의 회사를 지원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실리콘 밸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하고, 그 중 일부가 성공 신화를 만들어내고, 그렇게 성공했다 하면 천문학적인 돈을 버니 (수십억 벌었다고 하면 아주 작은 돈이다. 성공한 창업가들은 수백억 이상의 돈을 번다.),  창업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창업을 하다 실패했다 하더라도 괜찮다. 사람들이 그 경험을 우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job search를 해보면, 창업 경험이 있는 사람을 우대한다는 말을 requirement에서 찾을 수 있다.

엔지니어들도 좋은 대우를 받는다.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직급과 급여를 입력하게 하여 salary database를 구축한 Glass Door에 따르면, 보너스와 stock option을 포함한 senior 엔지니어 (5년 이상 경력)의 연간 보수는 다음과 같다.
  • Google: $177,878
  • Yahoo: $137,263
  • Apple: $100,000
  • Cisco: $106,228
  • Microsoft: $115,670
  • Sun Microsystems: $122,600
물론 이 곳이 물가가 비싸고, 미국은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수가 높기도 하지만, 그렇게 치더라도 한국의 senior engineer의 보수 (5000만~8000만원)에 비하면 훨씬 높은 액수이다.

3. 시스템 (System)
미국에는 business school이 많다.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business school에서 특히 높은 우선순위를 갖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창업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다녔던 Anderson school에는 Knapp Competition이라는 business plan competition이 있었는데, 해마다 이 때가 되면 하교 전체가 떠들썩하다.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학생들 앞에서 검증하고, 또 VC(venture capitalist)들에게 소개하는 기회를 갖게 되고, competition에서 1등하면 $25,000원의 상금과 학교의 지원을 받는다. 또, 내가 재미있게 들었던 과목이 business plan development였는데, 여기서도 컨셉은 비슷하다.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학생이 그 과목을 듣는 다른 학생들을 recruit 해서 팀을 만든 후 business plan을 만들고, 마지막 수업에서는 VC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 따라서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여기 와서 참 인상깊었던 것이 창업가와 투자자(VC)를 이어 주는 행사가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TechCrunch라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블로그에서 TechCrunch50이라는 행사를 열었는데, 심사위원에 의해 선별된 50개의 벤처기업이 VC 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시제품을 시연하는 행사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거의 대부분의 presentation을 봤는데, 아이디어에 감동했고, twitter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열기에 감동했다. 올해는 RedBeacon이라는 회사가 영예로운 1위를 차지했는데, 이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사가 알려질 뿐 아니라 VC의 투자를 받기도 쉬워진다. 2년 전 TechCrunch에서 1위를 차지했던 mint.com은 얼마 전 $170 million에 Intuit에 매각되었다. Demo.com도 또 다른 예이다. 여기서도 수많은 entrepreneur 들의 자신의 아이디어를 pitch했고, VC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았다. 여기서 처음 제품을 시연하고 지금은 잘 알려진 브랜드가 된 기업들은 WebEx, E-Trade, TiVo, shopping.com, salesforce.com, VM Ware, Second Life등 수도 없이 많다. 2004년에 Demo에서 pitch했던 회사들 중 25%가 큰 회사에 인수되었다.

학교와 기업의 연계도 한 몫을 한다. 지금은 초대형 기업이 된 VM Ware는 Stanford 교수가 창업을 한 회사이다. Stanford EE 에서 Ph.D를 하는 형에게 물어보았더니, 전자과 교수들 대부분이 이미 회사를 창업해서 운영하고 있거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자기 지도교수도 올해에 안식년을 갖는데, 그 때 창업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4. 돈 (Money)
실리콘 밸리에는 돈이 많다. 정말 많다. Down Jones\n에 따르면, 2007년에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10B가 투자되었다. 그리고 회사 하나가 성공하여 success하면\nbillion 단위로 움직인다. 회사 매입에 드는 돈도 천문학적이다. 예를 들어, Facebook의 회사 가치는 현재 $10B이라고 하고, Twitter의 현 가치는 $1 billion 정도라고 한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 많은 돈이 그냥 부동산에 박혀 있거나 금고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업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기도 부동산이 비싸다 ($1M 넘는 집들 정말 흔하다.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집은 $5M 이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도는 돈이 많다. 예를 들어, 지금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Richardson은, 은퇴하고 그 돈으로 startup company에 투자하고 board of director로 일하고 있다. 그런 경우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은퇴했다고 노는 게 아니라 startup company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회사 양육을 돕는 경우가 많다.
돈이 도는 이유는 유동성(liquidity)이 높기 때문이다. 아무리 장기 투자에 관심 있는 투자자라 해도 10년이나 돈을 한 군데 놓아두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Silicon Valley에서는 인수합병이 워낙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투자한 돈이 회수되는 기간이 짧다. 그리고 투자했던 기업 중 하나가 성공을 하면 정말 큰 돈을 번다. 그러면 그 돈으로 또 다른 회사들에게 재투자를 하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하면 과연 얼마나 큰 기업이 되는 걸까? 한국과 실리콘 밸리를 비교해보고 싶어 그림과 같이 Market Capitalization (주식 수 * 현재 주가) 계산을 해 보았다.
미국 1위의 검색 엔진 회사는 Google이고, 한국 1위는 Naver이다. Market cap 차이는? 무려 23배! Naver의 시가 총액이 $6.6B (이것도 사실 상당히 큰 거다)인데 반해, 구글의 시가 총액은 $151.18B이나 된다.
핸드폰과 laptop 을 만들어 성공한 제조업체 Apple과 삼성을 비교해도 여전히 차이가 있다. Apple은 $156.91B 인데 반해 삼성은 $97.5B이다.
여기에 실리콘 밸리의 신생기업인 VMWare와 Salesforce 를 보면 효과가 극대화된다. 아직은 작은 규모이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두 회사 모두 시가 총액은 $7B을 넘어 선다.

실리콘 밸리가 이상적이기만 한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을 관찰하면서 부러움을 많이 느꼈다. 인재가 많아 부럽고,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부럽고, 문화가 좋아 부럽고, 또 돈이 많아 부럽다. 이런 시스템은 하루 안에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으로 정부가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더 많은 창업자들이 생겨나고, 그들이 성공해 다른 창업자들을 키워 가고, 그렇게 해서 투자도 계속 늘려나가 세계적인 기업들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댓글 2개:

mahabanya :

부럽기만 한 환경이군요;ㅂ;

gardener :

역시 마음이 굳어지게 하는 글이군요.
4월1일부터 캐나다에서 스타트업비자를 준다고 하니, 그 날짜를 파이널로 잡고 시작해야겠습니다.

언젠가 저희회사가 잘되어서, 이 블로그에 이글을 그때 제가 썼다고, 다른 스타트업 분들 - 특히 지방대출신이라 많은 VC들에게 트라이조차 못하는 - 많은분들께, 힘을드릴수 있는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